나박김치/박정숙

 

여보! 당신위해 나박김치

 

갖은재료 작게, 얇게 썰어

 

소꿉장난 같은 물김치를 담았어요

 

드문드문 남은 몇 개 안되는 이로

 

오작오작 씹는 소리 재미있어요

 

그동안 잡수신 나박김치가 여든네통이네요

 

 

여보! 당신위해 10년 넘게 요플레를 만들었어요

 

블루베리, 마른 무화과 작게 자르고

 

꿀가루 넣고 당신 입에 맞게 만들었어요

 

맛있게 받아 잡수시니 아주아주 예뻐요

 

 

여보! 당신위해 가래삭는 약 만들었어요

 

약도라지 씻어 말려

 

생강, 대추, 감초, 배 넣고 푹 끓였어요

 

달달하고 쌉쌀해도

 

잘만 받아 잡수시니 너무너무 고마워요

 

 

하나님! 제가 하루걸러 남편 보러 가는 날에는

 

제발 비가오지 않게 해 주세요

 

오른손엔 지팡이 왼손엔 물건 망태기

 

비가 오면 우산 받을 손이 없어요

 

결혼 생활 56년간 받은 당신의 사랑을

 

이것으로 일만분의 일 (1/10000)인들 갚으리요만은

 

남은 날 동안 온갖 정성 다해 웃으면서

 

당신만을 사랑할게요. 사랑할게요.

 

 

(이 시를 쓴 박정숙님은 2009년 부터 진각노인요양센터에 입소해 계시는 남편을   

정성껏 보살피면서 그동안의 느낌을 시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2013년 어버이날 기념 '4회 진각 가족합창제'에서 이 시를 낭독하셔서  

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참석하신 모든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 후 남편은 일 년 정도 요양원에 계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물어오곤

하셨는데 지금은 제가 대구에 온 후론 연락이 끊어졌답니다.

언제나 입가에 미소를 짓게하는 그 분이 생각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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