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에도 뿌리가 있다
강을 보면 안다, 저기 봐라, 긴뿌리
골짜기 깊숙이 감춰놓고
줄기째, 줄기로만 꿈틀거려 여기 와 닿는,
내리는 비도 주룩주룩 내리면 하늘의 실뿌리 같고
미루나무 숲길 듬성성한 저 강가 마을들
세상의 유서 깊은 곁뿌리지만
근본 모르는 망종들처럼
우르르 쿠당탕 한밤의 집중호우 몰려들어
열댓 가구 옹기종기 마을 하나 깡그리
부숴놓고 떠나간 자리, 막돼먹은 저 홍수가
절개지의 사태 멋대로 끌고와
문전옥답까지 온통 자갈밭으로 갈아엎은 건
순리도 치수도 모르는 어느 후레자식,
산의 잔뿌리 마구 잘라낸 난개발 탓이리.
호호, 허물어진 동구 앞 시멘트 다리 난간에 걸려서
흘러가지도 일어서지도 못해 길게 드러누운 저것,
고향의 길동무, 늙은 느티나무가 아니라
깊디 깊었던 우리들 마음의 뿌리인 것을!
(제 3회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 p49-50 펴낸곳 중앙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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