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남, 「살구꽃」 낭송 홍연경

 

 

 

살구꽃

-장석남

 

 

마당에 살구꽃이 피었다
밤에도 흰 돛배처럼 떠 있다
흰빛에 분홍 얼룩 혹은
제 얼굴로 넘쳐버린 눈빛
더는 알 수 없는 빛도 스며서는
손 닿지 않는 데가 결리듯
담장 바깥까지도 환하다
 
지난 겨울엔 빈 가지 사이사이로
하늘이 튿어진 채 쏟아졌었다
그 하늘을 어쩌지 못하고 지금
이 꽃들을 피워서 제 몸뚱이에 꿰매는가?
꽃은 드문드문 굵은 가지 사이에도 돋았다
 
아무래도 이 꽃들은 지난 겨울 어떤,
하늘만 여러번씩 쳐다보던
살림살이의 사연만 같고 또
그 하늘 아래서는 제일로 낮은 말소리, 발소리 같은 것 들려서 내려온
神과 神의 얼굴만 같고
어스름녘 말없이 다니러 오는 누이만 같고
 
       (살구가 익을 때,
       시디신 하늘들이
       여러 개의 살구빛으로 영글어올 때 우리는
       늦은 밤에라도 한번씩 불을 켜고 나와서 바라다보자
       그런 어느날은 한 끼니쯤은 굶어라도 보자)
 
그리고 또한, 멀리서 어머니가 오시듯 살구꽃은 피었다
흰빛에 분홍 얼룩 혹은
어머니에, 하늘에 우리를 꿰매 감친 굵은 실밥, 자국들

 

 

 

 

시집『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창비, 2001)

―출처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문장)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메모 :

    아버지의 아리랑 / 김해화 / 낭송 이혜정 누이의 결혼식 날 빌린 버스를 타고 보성 장흥 지나 강진 마량에서 배에 실려 고금도를 가는데 아버지께서 노래를 부르셨다 목포의 눈물 비내리는 호남선 단장의 미아리 고개 축하하러 가는 마을 사람들 노래 끝나고 출렁출렁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 아버지께서 바다 빛깔 진도아리랑을 부르셨다 아리아리롱 스리스리롱 아라리가 나았네에 아아리랑 얼씨구절씨구 아라리이가 나았네 간다아 못 간다 얼마아나 울었냐아 정거자앙 마아당이 한강수가아 되얐네 어따 저 양반이 어하넘차 말고도 불르는 노래가 있그마 이" 마을 사람들 눈 휘둥그래지고 우리 동네 소리꾼 아버지 삼베 수건에 핑경 감아 장단맞추며 어허 어허하 넘차 어이하 넘차 어하 넘차 그렇게 살라고 쏘대 쌓더니 눈감고 낭께로 암 소양도 없구나 어허 어허하 넘차 어이하 넘차 어하 넘차 상여보다 앞서 가며 가는 길 쓸고 닦아주고 막걸리 몇 잔에 젖어 무거운 걸음으로 돌아오시면 노래 노자도 입밖에 내시지 않던 아버지 웬일일까 구성진 아버지의 아리랑이 내게는 들려오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였다 출렁이는 노래가 보였다 가난한 살림 끝에 혼숫감 하나 없이 몸뚱이 하나 달랑 시집보내는 막내딸 평생 가슴에 묻어 다듬었던 노래 혼수처럼 딸에게 안겨 주고 싶으셨을까 아버지께서 아리랑을 부르셨다 은은한 비취빛 아버지 노래가 누이 몸에 휘감겼다 나는 아버지 노래를 사진기로 찍었다 며칠 뒤 나온 사진에는 그러나 아버지의 아리랑은 푸른 바다 속으로 녹아들어가 보이지 않고 노래 뒤에 숨어 있던 아버지 주름진 슬픔만 찍혔다
출처 : 한국 시낭송 예술 협회
글쓴이 : 나팔꽃(이혜정) 원글보기
메모 :

      사평역에서(곽재구) 낭송 : 김미경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속에 던져주었다 -녹음; 세종미디어
출처 : 김미경의 사색노트
글쓴이 : 석 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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