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걸음 / 마경덕
산을 넘어
누군가 저녁의 고삐를 끌고 마을로 내려온다
새들은 공중의 지도를 따라 날아가고
산자락에서 늙은 똘감나무는 늦볕을 목에 두르고 서 있다
사방으로 번지는 소리 없는 기운에
능선의 긴 꼬리가 검은 빛으로 물들고
앞산의 등줄기가 아득해지고
받두렁에 뒹굴던 흙 묻은 신발짝도 뿌리째 뽑혀 풀이 죽은 달개배꽃도
저녁의 품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수레에
그 많은 저녁을 싣고 오는 이는 누구인가
눈을 뜨고도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무덤 속에 고인 어둠이 일제히
무덤 밖으로 나오는 시간
망연히 저편을 바라보며 저무는 일도, 모두 저 걸음이다.
시집-그녀의 외로움은 B형(상상인,2020.03)
마경덕 시인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신발론 글러브중독자 사물의 입 그녀의 외로움은 B형
제 2회 북한강문학성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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