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서럽다 / 이대흠
강물은 이미 지나온 곳으로 가지 않나니
또 한 해가 갈 것 같은 시월쯤이면
문득 나는 눈시울이 불어지네
사랑했던가 아팠던가
목숨을 걸고 고백했던 시절도 지나고
지금은 다만
세상으로 내가 아픈 시절
저녁은 빨리오고
슬픔을 아는 자는 황혼을 보네
울혈 든 데 많은 하늘에서
가는 실 같은 바람이 불어오느니
국화꽃 그림자가 창에 어리고
향기는 번져 노을이 스네
꽃 같은 잎 같은 뿌리같은
인연들을 생각하거니
쥐엄나무 그늘에 앉은 아버지 / 이대흠
아버지는 저수지 옆 사장에서
새하얀 모시옷에 청춘을 풀 먹였네
청산리 벽계수야 노래하였네
저수지에 푸르게 노랫소리 출렁거렸네
어머니는 모를 심었지만
아버지는 피를 뽑지 않았네
수이 감을 자랑 마라 늘어지는 가락에
우리들 유년은 오뉴월 엿처럼 늘어져
허기도 반찬이 되지 못했네
코스모스 향기에 목이 감긴 누이는
저수지에 빠졌네
물에 빠진 누이는 꽃향기로 날아가고
물을 뺀 저수지 흙탕물 든 모시옷
변한 건 없었네 장독대 한쪽 비었을 뿐
사람들 미친개를 저수지로 몰아갈 때
수이 간 누이는 아버지를 울렸네
어머니는 피밭에 나락처럼 한숨 쉬고
세월은 해와 함께 비탈로만 달려갔네
제 몸을 쥐어짜 꿀을 만든 쥐엄나무
그 나무 그늘에 앉은 아버지
노래하지 않았네
자식들 몸 팔려 간 신작로 바라보며
장독대 항아이처럼 검은 물 고였네
출처 : 현대문학신문[대구]시낭송치유연구협회
글쓴이 : 현대문학신문대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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