晩 秋
이 병 욱
'만추'라는 한문이 좋다. 어느 말이나 그 중에서도 호감이 가는 말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을 것이다. 많은 한자 중에 '만추'라는 말에 끌리는 것은 내 자신과 닮았기 때문이다. 마치 늦가을의 무게를 안고 떨어지는 가을 낙엽이 나의 삶을 연상케 한다.
푸른 봄의 색깔로 희망차게 돋았다가 뜨거운 여름에 활활 타오르는 청춘, 그리고 가을을 거쳐 쓸쓸하게 떨어지는 늦가을의 낙엽이야 말로 내 인생의 축소판과 비슷하다 하겠다.
인생이란 나 혼자만이 가는 길이 아니다. 어울렁 더울렁해야 할 이웃이 있고, 친구가 있고 가족이 있다. 때때로 불협화음도 있겠으나 그것도 하나의 일상이다. 이해와 배려로 감싸주어야 할 인생길이다. 아주 가까이에서 자연은 순리를 보여주고 가르쳐 주고 있다. 홀로 서 있는 나무는 외롭다. 여럿이 어우러져야 숲이 된다. 그 숲에 새들과 짐승이 노닐고 바람이 머문다. 그 나무들 역시 순환한다. 어찌 희망찬 봄이 오래 가기를 원하지 않는 식물이 있겠는가. 뜨거운 여름의 정열을 싫어하겠는가. 자연은 변하면서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말없이 우리들을 가르치고 있다.
계절은 변화와 순리를 무시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겸허히 받아들인다. 사람만이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욕심을 부리다가 손해를 보고 상처를 입는 것이다. 자연의 교훈이 어깨를 누르며 무겁게 다가온다. 과거에는 그것들을 작게 보았다. 돌이켜 보니 내 자신의 부족함이 많았다. 왜 지금에 와서야 그 무게가 느껴지는 걸까.
귀가 아프도록 들었던 '자연의 순리에 맞춰서 살아라' 하는 말이 왜 그렇게 작게 듣리고 멀리 있는 말처럼 들렸을까. 말을 줄이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어슬픈 자기 반성도 해 본다. 그나마 이 가을에 그 가르침을 되새김하게 되어 다행이다.
이제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좀 더 다르게 생각하고 먼 곳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리라. 맨발로 걸어 갈 계절은 시리겠지만 그 또한 숭고하게 맞이해야 할 시간이다.
가을을 맞이하면서 작은 꽃잎, 작은 물소리 하나에도 수많은 가르침이 있다는 것을 곱씹는다. 만추, 비록 인생은 가을날이지만 또 다른 만추를 본다. 색색이 고운 나뭇잎과 어우러진 바람과 햇살, 그 어울림이 있어 더욱 빛나는 계절이다. 홀로 가는 길은 멀지만 어울림이 있어 외롭지 않다. 아름다운 만추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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