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정숙영


빈가지에 걸린 바람

서러움 안고 휘돌아가던 날


하얀 베레모에 빨간 코트 입은

은발어머니의 사랑이야기

뇌리에 박힌 아린 기억 

 

절뚝거리는 다리

황금색 긴 지팡이에 의지하며

내게로 걸어 와

나 하나, 그대 하나

장미 두 송이 흔들며 인사를 한다


요양원에 계신 남편 만나려고

일상으로 찾아와

침상에 엎드려 눈시울 적시던 여인

표정 없는 두 볼에 얼굴을 묻고

침묵의 밀어 나누던 그 날

바로 결혼 53주년이란다


서툰 글씨로 쓴 손 편지 건네주며

수줍게 달아나던 베레모 여인의

두 눈 깊은 호수에 포근히 빠졌던 날


남편은 영혼이 빠진 듯

눈동자만 시계추 간격으로 깜빡대고

간절한 마디마디 통한의 외침

입 속에서 별사탕으로 녹고

마침표 없는 여인의 삶이

내 가슴 언저리에 얹혀있다

햇살 한 줌

사금파리에 앉아 반짝이는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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