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저린 꿈에서만 / 전봉건

 

그리라 하면 그리겠습니다

개울물에 어리는 풀포기 하나

개울속에 빛나는 돌맹이 하나

그렇습니다

고향의 것이라면

무엇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지금도 똑똑하게 틀리는 일 없이

얼마든지 그리겠습니다.

 

말을 하려면 말 하겠습니다

우물가에 늘어선 미루나무는 여섯 그루

우물 속에 노니는 큰 붕어도 여섯 마리

그렇습니다.

고향의 일이라면

무엇 하나 빠뜨리지 않고

지금도 생생하게 틀리는 일 없이

얼마든지 말하겠습니다.

       

마당 끝 큰 홰나무 아래로

삶은 강냉이 한 바가지 드시고

나를 찾으시던 어머님의 모습

가만히 옮기시던 그 발걸음 하나 하나

나는 지금도 말하고 그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한 가지만은

그러나 아무리 몸부림쳐도 그것만은

내가 그리질 못하고 말도 못합니다

 

강이 산으로 변하길 두 번

산이 강으로 변하길 두 번

그러고도 더 많이 흐른 세월이

가로 세로 파 놓은 어머님 이마의

어둡고 아픈 주름 살

 

어머님 꿈에 보는 어머남 주름살을

말로 하려면 목이 먼저 메이고

어머님, 꿈에 보는 어머님 주름살을

그림으로 그리라면 눈앞이 먼저 흐려집니다.

 

아! 이십 육 년

뼈저린 꿈에서만 뫼시는

어머님이시여

 



출처 : 중앙예술원 사무국 (牛性在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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