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복지사 2023. 10. 5. 14:41

백내(白川)/박방희

어느 해 여름 장마에 큰 물이 지고백내 황톳물이 학교 가는 길을 가로막아 그 도도한 흐름 앞에 망연히 서 있을 때,

 함께 건너자며 손 내밀었지요.

가늘고 긴 팔뚝으로 파르라니 또 다른 강이 흐르는데

그 손 잡고 둥둥 허리까지 차오는 물 건넜지요.

물 다 건너면 잡은 손 놓아야 된다는 생각에

아득히 손잡고 떠내려갔으면 했지요

우리 20리 등하굣길 둑에 핀 두 떨기 꽃처럼 한정 없이 떠내려가

먼먼 바다에 가 닿아도 좋으리라 생각했지요.

젖은 교복치마 내리며 임은 내게 미소 지어 보이곤 돌아서 갔지요.

그때 우리가 건넌 게 그저 백내의 냇물뿐 이었는지,

우리 인연의 한 굽이를 건너거나

이승의 한 생을 건넌 것은 아니었는지,

그 여름 손잡고 내 건너던 때 생각하며 멍하니 오래 서 있곤 하지요.

새하얀 팔뚝에 흐르던 파란 정맥의 강이 내게로 흘러 들어와

내 몸은 언제나 임 있는 쪽으로 열리는데,

 

임께선 언제 돌아와 이승의 못다 건넌 내마저 건너려는지,

혼자서는 못 가 닿을 피안으로

임 손잡고 건너 갈 꿈꾸며

아직도 까까머리 중학생은 그 냇가에 서 있는데.......